
아이 넷을 키우다 보면 가끔 제 자신이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는 생각에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막내가 태어나고 나서 큰아이들에게 "엄마 지금은 안 돼"라고 말해야 할 때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 오은영 박사님의 육아 철학을 접하면서 제 방식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는 위안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은 부모도 완벽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도, 몇 가지 핵심 원칙만 지키면 아이는 건강하게 자란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은영 박사 아버지의 '선 인정 후 훈계'가 만든 자존감
오은영 박사님이 회상하는 아버지의 육아법에는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선 인정 후 훈계'입니다. 여기서 '선 인정'이란 아이의 말이나 행동에 담긴 논리적 근거를 먼저 인정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박사님이 중학생 시절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 깡통이 사라졌을 때 어머니에게 따지듯 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왜 제 것을 물어보지도 않고 버렸어요?"라고 항의했을 때, 아버지는 먼저 "네 말이 맞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렇지만 엄마한테 그런 태도로 말하면 안 되는 거다"라고 훈계하셨다고 합니다.
이 방식은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에서 말하는 '안정 애착'을 형성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안정 애착이란 아이가 부모를 신뢰의 기반으로 삼아 세상을 탐색하고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는 관계를 뜻합니다. 박사님은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내가 인정받는 경험"이 자존감의 토대가 되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실제로 아동발달 연구에서도 부모의 일관된 인정과 공감이 아이의 자아존중감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아동학회).
제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서열을 중요하게 가르쳤습니다. 군인 출신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어릴 적 오빠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교육받은 영향인지 모르겠습니다. 둘째가 끼여서 불쌍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셋째에게 양보를 요구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방식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도 아이들 말을 먼저 들어주고, "네 말이 맞아, 그런데 이건 이래서 안 돼"라는 식으로 말했더라면 아이들이 덜 억울해했을까요? 하지만 다행히도 저는 아이들과 한 명씩 데이트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박사님이 "아이는 질보다 양이 아니라 양보다 질"이라고 강조하신 부분입니다. 30분이라도 마음을 다해 아이를 대하면 애착 형성에 충분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워킹맘인 분들에게는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화법, 긍정 회로 vs 부정 회로
박사님은 아이들이 어릴 때 어떤 말을 듣고 자라느냐에 따라 뇌 속에 '경부고속도로'가 뚫린다고 비유하셨습니다. 부정적인 말("너는 제대로 한 게 뭐가 있어?")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부정 회로가 고속도로처럼 넓어지고, 긍정적인 말("열심히 한 게 더 중요해, 넌 잘하는 거야")을 들으면 긍정 회로가 발달한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여기서 '회로'란 신경과학에서 말하는 신경망(Neural Network)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반복된 경험이 뇌의 특정 경로를 강화시켜 비슷한 상황에서 자동으로 그 경로를 따라 반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되어 직장에서 "이 서류 다시 써보세요"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부정 회로가 발달한 사람은 "나는 이 회사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고 해석하지만, 긍정 회로가 발달한 사람은 "개선할 점이 있나 보다"라고 받아들입니다. 이는 인지행동치료(CBT, Cognitive Behavioral Therapy)에서 다루는 '자동적 사고'와도 연결됩니다. 자동적 사고란 특정 상황에서 의식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데, 어릴 적 형성된 사고 패턴이 평생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제 경험상 이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이가 네 명이다 보니 저도 지칠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지금 힘드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라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제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해줬습니다.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들은 훨씬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너희 엄마 이렇게 못났어"라고 자책하는 말을 무심코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제 안에 부정 회로가 심어지는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
박사님은 부모가 아이에게 해야 할 핵심 화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셨습니다.
- 시험을 못 봤어도 "열심히 한 게 보였어, 그게 더 중요해"
- 실수를 했어도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 노력을 인정하는 말을 자주 해주기
이런 말들이 쌓이면 아이는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존감의 토대'를 갖추게 됩니다.
워킹맘 오은영, 그리고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부모
박사님도 워킹맘이셨습니다. 방송에서 "일하는 부모는 아이 문제를 다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다 부모 탓은 아니라는 것, 아이는 성장 과정에서 당연히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변화를 겪는다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성장 과정의 변화'란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 과업(Developmental Task)'을 의미합니다. 발달 과업이란 각 연령대에서 아이가 달성해야 할 심리·사회적 목표를 뜻하며, 이 과정에서 일시적인 퇴행이나 문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박사님은 또한 "함께 보내는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30분, 1시간이라도 마음을 다해 아이를 대하면 충분히 좋은 애착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애착 연구의 권위자인 메리 에인스워스(Mary Ainsworth)도 "부모가 민감하게(sensitively) 반응하는 것이 애착 안정성을 결정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여기서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아이의 신호를 빠르고 적절하게 알아차려 반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도 이 말에 크게 공감합니다. 아이가 네 명이다 보니 모두에게 완벽한 엄마가 될 수는 없습니다. 초등 1, 2학년 아이들은 아직 엄마의 관심이 필요한데 막내가 애착 형성 시기라 늘 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면 큰아이들에게 양보를 요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게 또 다른 희생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고민도 되지만, 솔직하게 아이들과 제 상황을 이야기 나눕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놀랍게도 저를 이해하고 배려해줍니다.
박사님이 마지막으로 강조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 자격은 어디에 있냐?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0순위로 달려가는 그 마음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부모 스스로에게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많이 힘들었지,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어. 괜찮아." 이 말을 들으면서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그 자체가 위로였습니다.
결국 육아에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박사님이 말씀하신 몇 가지 원칙—아이의 말을 먼저 인정하고,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고, 마음을 다해 대하는 시간을 만들고, 부모 자신도 돌보는 것—만 지킨다면 아이는 충분히 건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저도 오늘부터 아이들에게 "엄마가 오늘 많이 힘들었는데도 너희 덕분에 웃었어"라고 말해봐야겠습니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어도, 최선을 다하는 엄마면 충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