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성이 좋은 아이는 친구가 많은 아이일까요? 저는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어릴 때부터 소심해 보이고 친구들과의 다툼에서도 거의 수용적인 모습만 보여서 걱정이 컸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친구와 말다툼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예상과 달리 아이는 논리적으로 자기 입장을 설명하며 전혀 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가 아이의 사회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사회성의 핵심은 자기인식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부모님들이 사회성과 사교성을 혼동합니다. 처음 보는 아이들 무리에 쉽게 섞이고 금방 친해지는 모습을 사회성이 좋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여기서 사교성(sociability)이란 낯선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고 타인과 쉽게 관계를 맺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반면 사회성(social competence)은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고 자신과 타인의 욕구를 조율하는 능력입니다.
진짜 사회성은 아이들끼리 익숙해진 후 갈등이 생겼을 때 드러납니다. 한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고 싶고 다른 아이는 소꿉놀이를 하고 싶을 때, 사회성이 발달한 아이는 "내가 원하는 걸 얼마나 하고 네가 원하는 거 할까?" 또는 "네가 원하는 거 먼저 하고 내가 원하는 거 하자"라고 제안합니다. 더 영리한 경우 "난 기차 만들 테니 너는 음식 세팅 하라"며 놀이를 융합하기도 하죠.
그런데 이런 문제 해결 능력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바로 자기 감정과 욕구에 대한 인식입니다. 아이가 친구에게 장난감을 뺏겼을 때 부모는 흔히 "너도 달라고 그러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에게 "너 안 속상했어?"라고 묻지는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 아이가 친구 것을 가져왔을 때도 혼은 내지만 "너는 어떤 마음이 들어서 그걸 가져온 거야?"라는 질문은 잘 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첫째가 합기도를 배우면서 이런 실수를 했습니다. 몸으로 싸우는 법을 배우면 자신감이 생길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아이 스스로 상황을 인식하고 자기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아이가 친구와의 다툼에서 논리적으로 자기 입장을 설명할 수 있었던 건 본인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명확한 자기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담 전문가들은 이를 '자기 조망(self-perspective)'이라고 부릅니다. 자기 조망이란 자신의 감정, 생각,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이 능력이 발달해야 비로소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타인 조망(other-perspective)'이 가능해집니다. 순서를 바꿀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는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상황을 먼저 인식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아까 엄마가 친구가 네 거 가져가는 거 봤는데, 너는 어땠어? 괜찮았어?" 이렇게 질문하면 아이는 상황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처음엔 "괜찮았어"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진짜 괜찮을 수도 있고, 자기 감정을 아직 인식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반복하면 아이는 점차 자기 감정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눈맞춤과 소수관계가 만드는 진짜 사회성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고등학교로 갈수록 눈맞춤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동심리 전문가들은 이를 '사회적 단서(social cue) 인식의 결핍'이라고 설명합니다(출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눈맞춤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읽고 교감하는 핵심 통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게 되었을까요? 아기 때는 "엄마 눈 속에 네가 있어"라며 자주 눈을 맞췄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설거지하면서 "어, 그랬어?"라고 대답하거나 휴대폰 보며 "응응" 하게 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요한 건 매번 눈을 맞추라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 한두 번이라도 아이가 말할 때 손을 멈추고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특히 아이가 친구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친구가 나한테 이렇게 말했어"라고 할 때 눈을 맞추며 "그때 네 기분은 어땠어?"라고 물어보세요.
또 하나 오해가 있습니다. 사회성을 키우려면 많은 친구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부모들은 자주 묻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이가 소수의 친구들하고만 노는데 놀이터에 자주 데려가서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정반대입니다. 수줍거나 사회성이 아직 발달 중인 아이에게는 편안하게 느끼는 소수의 친구들과 반복적으로 다양한 상황을 경험하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이번 주는 A, 다음 주는 B, 그다음 주는 C를 만나면 아이는 계속 초기 관계만 경험합니다. 관계의 깊이와 곡선을 배울 수 없죠.
반복적으로 만나는 친구와는 갈등도 생기고 화해도 하고 다시 친해지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것이 진짜 사회성입니다. 제 첫째도 같은 친구들과 오랫동안 놀면서 갈등 상황에서 자기 입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엔 회피하던 아이가 본인이 옳다고 확신하는 상황에서는 끝까지 입장을 지키는 모습을 보였을 때, 저는 소수의 깊은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사회성 발달을 위해 꼭 필요한 실천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가 갈등 상황에 처했을 때 "너는 어땠어?"라고 자기 감정을 먼저 인식하도록 돕기
- 하루 한 번 이상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기
- 많은 친구보다 소수의 친구와 깊고 반복적인 관계 경험하기
- 일주일에 한 번, 10분간 아이가 주도하는 놀이 시간 갖기
특히 마지막 항목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완전히 주도하는 놀이 시간에는 부모가 제한을 설정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네가 원하는 방법으로 놀 수 있지만, 엄마한테 총 쏘는 건 안 돼"라고 말하면 아이는 긍정적인 상황에서 제한을 배웁니다. 이것이 나중에 또래 관계에서 상대방의 경계를 존중하는 능력으로 발달합니다.
양육의 최종 목표는?
사회성은 양육의 최종 목표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는 이유는 아이가 우리 없이도 사회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니까요. 그래서 초등학교 시기는 정말 중요합니다. 이전에는 만난 적 없는 문제들을 마주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20명이 넘는 교실에서 매일 같은 아이들과 만나야 하는 상황, 우리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환경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미숙함이 당연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초등학생들의 정서 발달과 사회성 발달은 후발주자입니다. 몸은 크고 언어 능력은 발달했지만, 감정 조절과 관계 능력은 아직 자라는 중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너 그렇게 말하면 미움받아"라고 예방 접종하듯 말하는 것보다, 아이 스스로 "아,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친구가 속상해했구나"라고 인식하도록 돕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초등학교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눈맞춤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일수록 직접적인 눈 맞춤을 불편해합니다. 그렇기에 가정에서의 눈맞춤 경험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밥 먹으면서라도 한 번씩 눈을 마주치고, 아이 눈동자 속에 내가 비치는 모습을 함께 확인하는 경험. 이것만으로도 아이의 자기인식과 사회성은 한 단계 성장합니다.
저는 첫째를 키우며 온실 속 화초처럼 키우는 건 아닐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아이는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아는 투명한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그걸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죠. 사회성은 많은 친구를 사귀는 능력이 아니라 진실한 관계 속에서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아이 자신에 대한 이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