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네 아이를 모두 등원시키고 나면 집 안이 조용해집니다. 그 순간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습니다. 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집안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친구와 점심을 먹고 돌아오자마자 어린이집에서 넷째가 열이 난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아이를 데려와 상태를 살펴보고 케어를 했는데요. 자고 있는 아이를 보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 아직까지는 나는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대기자'구나, 비상시를 대비해 자리를 지켜야 하는 사람이구나.. 조급해 하지말자..' 하고요.
소아과 의사가 전하는 육아 감정 에세이
부모마음세탁소는 소아과 의사 두 분이 공동으로 집필한 육아 에세이입니다. 책 제목처럼 육아로 구겨진 마음을 다려주는 따뜻한 위로를 담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을 펼쳐 든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감정들이 정상인지, 저만 이런 건지 궁금했거든요.
여기서 육아 번아웃(Burnout)이란 육아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고갈 상태를 의미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번아웃을 '직업적 현상'으로 분류하는데요, 육아도 마찬가지로 극심한 피로감과 무기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책은 B.I.G.G.E.R라는 6가지 감정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본딩(Bonding), 인시큐리티(Insecurity), 그레이티튜드(Gratitude), 길트 앤 레이지(Guilt & Rage), 익스저스천(Exhaustion), 리질리언스(Resilience)입니다. 이 여섯 단어가 모여 '점점 커진다'는 뜻의 BIGGER를 이루는데, 이는 육아를 통해 부모도 함께 성장한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저는 특히 죄책감과 분노 챕터에서 많이 울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난 뒤 자는 아이를 보며 느끼는 감정, 그 복잡한 마음을 글로 읽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위로가 되더라고요.
많은 부모님들이 육아 중 느끼는 감정에 대해 스스로를 탓한다는 의견도 있는데, 저는 실제로 그랬습니다. 아이에게 화가 날 때마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나는 진짜 애를 싫어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그런 감정들이 부모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상 범위 안에 있다고 말해줍니다.
책에는 각 챕터마다 필사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필사(筆寫)란 마음에 드는 글귀를 직접 손으로 써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단순히 읽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쓰면서 감정적으로 한 번 더 되새기게 되는 효과가 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미 충분히 좋은 부모야'라는 출판사의 카피라이트였습니다. 저는 항상 부족한 엄마라고 생각했거든요. 워킹맘으로 일하다가도 아이가 아프면 '집을 지켰어야 했나' 하는 죄책감에 빠지고, 집에 있으면 있는 대로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조급함에 시달렸습니다.
육아 관련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낮을수록 육아 스트레스가 높아진다고 합니다(출처: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특정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공감의 글
일반적으로 의사가 쓴 책은 전문적이지만 딱딱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진료실에서는 평온함을 유지해야 하는 정신과 의사가 한 아이의 부모로서 느낀 솔직한 감정을 담았기에 더 공감이 갔습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우리 동네 어린이 미술관'이라는 특별 코너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들을 수록한 공간인데요, 어설프지만 순수한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제 넷째가 그린 낙서 같은 그림들도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육아 관련 심리학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심리적 탄력을 의미하는데, 육아에서 이것만큼 중요한 게 없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지치고 불안해도, 회복탄력성이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으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저는 제 선택을 조금 더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 육아 중 자괴감에 빠지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대기자'라는 제 역할이 또 하나의 소중한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주요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육아로 느끼는 감정은 정상 범위 안에 있음
- 회복탄력성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음
- 지금 이 순간도 충분히 잘하고 있음
육아 감정을 세탁하는 따뜻한 위로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의사라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고,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공감해준다는 점입니다. 소아과 의사가 전하는 위로라서 더 안정감이 들었습니다. 전문가가 '괜찮다, 정상이다'라고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더라고요.
저는 특히 죄책감과 분노 챕터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난 후 느끼는 복잡한 감정, 그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낸 글을 읽으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교정을 거듭하면서도 계속 울컥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저 역시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울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서 제 마음이 정말 '세탁'된 느낌이었습니다. 구겨지고 얼룩진 마음이 깨끗이 빨래되어 햇볕에 말린 것처럼 가벼워졌거든요. 아이들에게 온전히 초점이 맞춰진 현재의 삶도 소중한 것임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임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육아는 끝없는 마라톤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긴 여정 속에서 잠깐 멈춰 서서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부모마음세탁소는 바로 그런 쉼터 같은 책입니다. 지금 육아로 힘들어하시는 모든 부모님께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정말, 충분히 잘하고 계십니다.